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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약업계의 ‘큰 바위 얼굴’ 임성기

기사승인 2020.09.16  08:55:3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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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조한승의 이야기 세상

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에 학교에서 큰 바위 얼굴에 대해 배웠습니다.

80년 전 김포에는 그러한 ‘큰 바위 얼굴’이 되고자 꿈을 가진 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.

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왜 권력과 돈, 명예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쳐가며 노력하고 싸우는가. 또 그런 것들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.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그 답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쏟았습니다.

그는 그의 부모님께 모든 것에 대하여 묻고 또 물었습니다. 그러나 시골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과 밭에 나가 농삿일을 하시면서 웃어른을 모시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던 부모님으로서는 특별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실력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습니다.

부모님께서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들에게 그 동네 뒷산에 홀로 서 있는 큰 바위얼굴을 보며 “너도 커서 저 큰 바위얼굴처럼 되어라”는 말씀뿐이었습니다. 그렇지만 그의 부모님은 일상생활을 통해 말이 아닌 자세로 가르쳐주신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.

첫째는 정직이었습니다.

어려서부터 정직에 관한 부모님 말씀을 듣고 자란 어린이는 언제나 정직하였습니다. 한참 성장기에 남의 집 과일농장을 지나갈 때 배가고파도 남의 것은 처다 보지도 않았습니다.

친구들이 꼬였지만 그는 절대로, 농담일지라도 거짓을 하지 않았습니다. 그는 그의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말씀, 즉 도산 안창호선생의 “비록 농담일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”는 말씀을 늘 가슴에 품었습니다.

둘째는 성실이었습니다.

그의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, 즉 “남이 보든 보지 않던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성실하게 하라”

그는 시골에서 초·중·고교를 다녔지만 결석은 물론 지각한번 하지 않았습니다. 선생님의 가르침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였기에 학교성적은 언재나 수석이었습니다.

그는 적은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. 세 번째는 창의적 사고입니다. 그는 늘 남보다 앞서가는 사람이었으며 모든 사물을 볼 때는 반드시 ‘왜’를 생각했습니다.

그의 생각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창조적이었습니다. 어떠한 일을 보든지 “왜 그랬을까” “어떻게 하면 해결할까”를 고민했습니다. 그렇게 그는 큰 바위얼굴이 되었습니다.

1967년 서울 동대문에서 약국을 시작해 1973년 한미약품을 창업한 그는 '한국형 연구개발(R&D)을 통한 제약강국 건설'이라는 꿈을 품고 48년간 기업을 이끌며 일생을 헌신하고 지난 8월 2일 향년 80세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.

정직과 성실, 그리고 끊임없는 창의와 창조적 정신으로 국내 제약업계의 큰 바위얼굴로 남았습니다.

그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 생명기업인 한미약품 임성기회장이며 평생을 함께한 저의 스승 같은 친구입니다. <김포새마음경로대학장>

김포저널 webmaster@gimpojn.com

<저작권자 © 김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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